1. 호의[친절한 마음]

  길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혹은 어딘가 낯선 장소에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당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행동을 한다면 당신은 상대방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당신은 '경계'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그 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그 기준이 애매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더 정확히는 현대의 도시(都市)에 살아가면서] 다른 [낯선]사람들을 경계하게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평소에 얼굴만 조금 알던 사람[혹은 한 두번 밖에 못 본 사람]이 갑자기 친근한 태도를 보이거나 호의를 베푼다면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이 왜이러지. 나한테 부탁할 것 있나. 무슨 의도야.

  우리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안면은 있지만 친근함의 정도가 0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호의조차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접근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까? 현재 당신이 위치한 곳이 낯선 장소라면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다른 사람[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움을 받는 것[좀 힘들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되는 선까지]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는 스스로, 혼자만 잘 하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 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저기요, 제가 관상을 좀 볼 줄아는데요. 도를 아십니까. 교회 다니시나요.를 부르짖고 다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2.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면 어쩌지?

  지하철 5호선.군자역[정확히 말하면 5.7호선 환승역이다]. 한 여자가 스크린도어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 곳이 초행길인 것 처럼 보인다. 밤 늦은 시각. 열차운행은 서서히 뜸해지고 있었다.
  
  방화 방향 열차가[5호선은 방화 방향과 상일동, 마천 방향 두 코스로 나누어지고, 상일동, 마천 방향은 상일동행과 마천행으로 나뉜다]가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열차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토해낸다. 7호선 플랫폼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발바닥을 땅에 바쁘게 부딪었다. 그 여자는, 스크린도어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지금 막 도착한 열차에 올라야 할 지, 오르지 말아야 할 지 확신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한다. 저기요, 이거 마천가는 건가요?

  나는, 피곤한 몸을 열차에 실었다. 올림픽공원을 지나는 주말의 열차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올림픽공원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피로가 함께 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다양한 표정을 싣고 달린다. 강동, 천호역을 지나 군자역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나는 7호선 군자에서부터는 앉아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발걸음을 한 탓에, 오늘 하루 종일 너무 오래 서 있었던 탓에 앉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나의 발바닥은 나에게 투덜대고 있다. 오늘은 할 만큼 했다고. 

  This station is Gunja. 기계의 울림이 열차 안에 울려 퍼진 후, 열차는 군자역에 멈춰선다. 열차의 출입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100m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듯.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갔고, 나도 그들과 함께 열차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의 시선을 스쳐 지나간다. 나의 시선은 재빠르게 무언가를 찾고 있다. ←7호선 갈아타는 방향.

  한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저기요. 내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 여자를 향한다. 그 여자는 말을 이었다. 마천 가려면 이쪽[내가 열차를 타고 온 쪽]에서 타면 되나요? 아, 아니요. 반대 쪽에서 타세요[바로 뒤쪽].라고 말하면서 뒤쪽을 가리켰다. 아 네, 고맙습니다.라고 조용히 덧붙였다. 아, 잠시만요. 네? [나는 상황 스크린을 확인 해 보고 말했다] 다음 열차 타면 되네요. 이쪽은 상일동행이랑 마천행이랑 열차가 다르거든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7호선 플랫폼을 향해 발바닥을 부딪었다. 초행길, 친구집을 찾아가나? 왜 내 앞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도움을 무시한 채 그냥 스쳐 지나갔을까?를 생각하며, 그녀의 시선에서 빠져나갔다.


3. Grasias?[스페인어, 감사합니다.]


  호주를 떠난 비행기는 L.A공항에 도착했다. 따뜻했던[더웠다고 하는 편이 맞다. 호주는 여름이었으니까] 공기는 불과 11시간만에 차가움으로 바뀌어 내 피부에 닿았다. 강철빛 하늘은 이 곳은 겨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역시 겨울은 저런 하늘이 어울려.라고 생각해봤다. L.A공항의 몽환적 분위기는 그 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나는 곧 다른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시티(Mexico City)로 향해야 했기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멕시코행 비행기가 보딩(Boarding)을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나타났다. 나는 기계적으로 내 몸을 움직였다[파블로프(Pavlov)의 실험에서 개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던 것 처럼] 비행기에 내 몸을 싣기위해 이동했다.

  피곤했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비행이었다[언젠가부터 비행기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창 밖에는 바다와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언제 도착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기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나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꼇다. 뭐지?. 생각을 해 보았다. 기내 방송의 언어. 어느새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바뀌어있었다.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내 귀에 더 각인되었다. 마지막 한 마디밖에 듣지 못했다. Grasias(그라시아스).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알던 표지판의 언어가 아니었다. 특이했다. 내 눈은 가장 먼저 낯섦을 인식했다. 내 몸도 이 곳이 낯선 곳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낯.설.다. 라는 것[어떻게 보면 이 낯섦이 여행에서 느끼는 묘미중 하나이다]

  영어가 없었다[전 세계의 어느 공항을 가도 볼 수 있었던 것이 영어였기에, 당황했다]. 오직, 스페인어였다[멕시코는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였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그 낯섦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 부터.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 스페인어를 공부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음. 이라고.

  나의 유일한 생존 수단은, 비행기 티켓. 다른 건, 쓸모 없었다. 내가 가진 언어는 모조리 쓸모 없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은 없었다. 나는,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물었다[물었다기 보다는 보여주었다],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손짓을 해 주었다. 손짓은 만국 공통 언어였다.


4. 버스에 올랐다.

  멕시코시티의 하늘로 치솟은 비행기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떨어졌다. 하늘에서 본 카리브해는 아름다웠다. 그는 콜롬비아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세계 1위의 범죄율을 자랑하는 곳. 보고타.라는 것이었다. 그는 론니 플래닛 남아메리카(Lonely planet South America)의 콜롬비아 부분을 읽는다. 어떻게 숙소가 있는 지역까지 가야하지?를 생각하며.

  공항 앞에서 버스에 올라탔다. 소형 버스였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저렴한 교통 수단이었다[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가장 저렴한 교통 수단이기도 했다]. 그는 어떤 버스를 타야할 지 몰랐지만, 그냥 무턱대고 버스에 오른 것이다. Centro 라고 유리창 앞에 적힌 버스는 그를 싣고 달렸다. 그 버스를 타면, 시내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는 버스에 올랐던 것이다.

  그가 가진 지도에는 그가 내려야 할 곳의 위치는 나와 있었지만, 버스의 노선도 따위는 나와있지 않았다. 그가 첫 발을 내딛은 공항의 위치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물을 사람이 없었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도 없었다. 그와 함께 하는 건 오직 '느낌'뿐이었다.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새로지은 빌딩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쳤다. 그는 불안했다. 저 곳이 시내 중심가인가? [완전한 시내 중심가 처럼 보이지 않았기에]그는 긴가민가했다. 불안했다.

  저 멀리, 높은 빌딩들이 또 보였다. 깔끔한[새로 지은듯한] 느낌이 나는 빌딩들이 모여있던 지역은 서서히 버스의 매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점점 불안해졌다. 창 밖엔 낮은 집들만이 보였다. 시장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고, 거리는 어지러웠다[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주변에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1층 또는 2층이었다.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내가 시내를 한참 지나친 것은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버스의 하차 벨을 누른 다음,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버스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저 멀리 사라졌다.


5. 목적지가 어디에요?

  나는 지도를 펼쳐 들었다[지도를 펼쳐 든다고 해서 별다른 좋은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묻는다기 보다는 외마디 절규였다]. 센트로, 센트로(Centro, Centro). 내가 가려고 한 숙소[나는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여행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의 위치는 센트로에 가까운 것 같았기에, 일단 시내로 가야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손으로 가리켰다. 버스가 사라져간 방향.

  나는 버스가 지나간 흔적을 따라 걸었다. 30kg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론니플래닛을 들고, 한쪽 어깨에는 잠베(djambe, 아프리카 악기)를 들고 걸었다. 너무 섣불리 버스에서 내린 것을 후회했다. 한참을 걸었다. 땀이 났다. 잿빛 하늘 사이로 햇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남미의 12월이었지만 생각보다 무더운 날씨는 아니었다[해발고도 3000m에 가까웠기에].

  걷다보니, 높은 빌딩들이 눈 앞에 보였다. 큰 길이 보였다.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아, 저기가 센트로인가? 걸었다. 또 걷고 또 걸었다. 저 앞의 큰 길과 고가 도로를 향해서 걸었다. 저 곳에 가면 뭐라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눈 앞에, 큰 빌딩이 나타났고, 그 빌딩과 나는 큰 도로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6. 그녀는 그와 헤어졌다.

  한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스페인어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는 그 순간 보고타(Bogota)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를 범죄자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물론 이쁘다고 범죄자가 아니란 법은 없지만]. 그는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지도 위에 표시된 한 지점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녀는 뭔가 말했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당황스러움이 그의 얼굴에 가득 담겼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팔을 감쌌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면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는 더욱 당황했다. 어, 왜 팔짱을 끼는거지? 그의 몸은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온 몸의 신경이, 그녀가 팔짱을 낀 쪽으로 쏠렸다. 소매치기인가? 소매치기는 아니겠지. 아무리 여기가 범죄로 악명 높은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지도를 보며, 그를 안내했다. 길을 몇 개 건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가였다. 상당히 높은 빌딩이 눈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는 멈춰섰고. 그녀는 그에게 뭐라고 말했다. 빌딩과 가로수로 가려져 있는 길 저편을 가리키면서.
  그녀는 웃었다. 그는 아직까지 상황판단이 덜 된 상태였다. 몇 초 뒤. 그는 그 상황이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미소를 띠며 그의 귓가에 가벼운 숨결을 머물게 했다. 그리고, 알지 못할 스페인어도 몇 마디 남겼다. 그런, 그녀의 흔적을 그곳에 남긴채 저 쪽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좀 더 친절하게 해주지 못했을까?. 그녀가 소매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하게 되었을까?


7. 걸었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는 걸었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서. 그러자, 지도에 표시된 건물들이 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탄식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잿빛 구름들 사이로 간간히 보이던 햇살은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큰 건물의 로비로 뛰어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로비로 몰렸다.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반가웠다. 영어로 몇 마디 대화를 했다. 소나기라고 생각 했지만,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나와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던 사람과 그의 친구들이 내 주변에 서 있었다. 내 가방 뒤에서, 뭔가 움직이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설마. 라는 생각을 했다. 설마 내 뒤에는 지금, 나와 좀전에 이야기 하던 남자가 있을 텐데,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텐데. 설마.

  비가 그친 뒤, 사람들이 사라졌다.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쳤다. 그의 손은 나의 가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 보았다. 가방이 열려 있었다.



-LAX


 - MEXICANA air

- 보고타 공항


- 보고타 거리


- 저렴한 버스. 어디를 가든 가격 동일

- 센트로 거리

-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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