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또는 영화 속 주인공을 찾아서.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다 보면, 간혹 그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실제로 테마 여행이라고 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찾아다니는, 소위 말해, 영화 여행을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그 배경을 실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아름답다거나 멋있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또한 영상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 가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장소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어떤 특정한 장소를 접했을 때는 그렇지가 못하다[이게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하게 된다[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 나온다면 그 인물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아름답게[혹은 멋있게] 묘사된 주인공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인공과 더불어 평화롭거나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 책에서는 배경이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고 있더라도[언급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는 배경의 이미지가 형성되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그 묘사되고 있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 이미 머릿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그 모습이 그려지고 있을 수가 있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그의 소설들은 그의 다양한 여행 경험을 담고 있다]. 그의 소설들 속에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있고, 다양한 배경이 있다. <연금술사>의 양치기와 그의 여정. <프로토벨로의 마녀>의 마녀와 그 배경이 되는 영국과 루마니아 시비우(Sibiu). <순례자>의 주인공과 스페인 산티아고길에 대한 흥미와 다양한 묘사들. 여행을 다닐 때[여행을 다니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소설을 뽑으라면,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들을 뽑을 수 있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의 소설들은 그 여행지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책들도,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두 사람[파울로 코엘류와 알랭 드 보통]이 함께한다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


2. 작가의 흔적을 찾아서.
 
   김유정 문학관. 이효석 문학관. 구상 문학관. 정지용 문학관. 서정주 문학관. 그리고 각 작가의 생가(生家)들. 지방자치단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그 지방 출신의 작가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손질하고 다듬어 놓았다[이미 사라져 버린 것은 재현시켜 놓기도 했다]. 

  정지용의 생가를 찾아가서, 그 주변을 둘러 보고, 안내 책자를 읽거나 설명을 듣는다. 이효석의 흔적을 좇기 위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무렵>의 달빛이 흐드러지게 비치는 메밀밭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그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곳은 언제나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곳은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였기 때문에, 언제나 그 곳은 사람들을 맛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엔, 한가지가 부족하다. 진실성.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배경은 같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진실성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효석의 소설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에서 묻어나오는 그런 느낌도, 채만식의 <탁류>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그 시대의 진실된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 그 빈자리엔 새로운 것들이, 인위적인 것이 들어서 있다.

  그런 것들을 바라 보는 마음 한켠엔 언제나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함은 항상 손가락 끝에서 울리는 짤막한 소리 하나로 대체 되곤 했다. "찰칵"



3. 베로니카는 그 곳에 앉아 있을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베로니카는 수도원 창가에서 조그마한 광장의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조차 낯선 도시에서. 그 도시의 이름은 '류블랴나(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였다. 베로니카가 항상 창가에서 바라보던 그 분수대가 있는 조그마한 광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이 딱히 좋다고 말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책에서 조차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면, 진짜 분수대가 있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베로니카가 세상을 내다보던 창문이 진짜 있을지 궁금했다.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리고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겨보고 싶었다.

  왠지 그곳은 여유가 가득할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만 한잔 마시고 그 곳을 미련없이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기차는 류블랴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국경에서 따로 여권을 검사하지는 않았다[유럽연합 국가들은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4.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류블랴나.

  그를 실은 기차는 자그레브[Zagreb, 크로아티아의 수도]역을 떠난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간혹 빗방울이 창문에 할퀴고 지나갔다. 얼핏, 창 밖을 바라보니 자그레브 역 앞의 동상이 보이는 듯 하다.

  언젠가, 자그레브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좇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는 자그레브역 플렛폼에서 기차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류블랴나엔 다음에 꼭 가리라고 생각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남쪽 해안도시 스플리트[Split, 아드리안해의 미항(美港)]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발길 닿는대로 자그레브의 거리를  거닐었고, 성당을 드나들었으며, 시장을 거닐며 잘 익은 과일들을 탐했고,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세련되어 보이는 크로아티아 국기 무늬를 한 지붕을 구경했고, 한창 축구를 잘하던 동유럽의 축구 강호 크로아티아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자그레브역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 역을 곁에 두고 슬로베니아로 향하고 있었다. 자그레브에서 3시간. 3시간이면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였다. 겨우 3시간이면 크로아티아의 수도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갈 수 있다.

  그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류블랴나. 얼마나 가 보고 싶던 곳이었던가. 론니 플래닛의 류블랴나 페이지를 펼쳐서 그가 찾아가야 할 곳을 체크해 두었다. 류블랴나에서 갈 만한 곳도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가고 싶어하던 그곳[도시의 중앙 광장]에도 체크를 해 두었다. 그가 머무려고 하는 숙소에서 광장까지 어떻게 가면 될 지도 체크해 두었다.


5. 안녕 베로니카.

  기차는 류블랴나역에 멈추었다. 기차는 슬로베니아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한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건물로 향했다. 작은 규모의 역.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역과 비슷한 크기다. 작고 아담하고. 역 안에는 매점이 하나 있고, 맥도날드가 있다. 자판기 몇 개가 있고, 관광 안내소가 있다. 2층에는 매표 창구가 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몇 개 주섬주섬 챙겨서, 숙소를 찾아간다.

  숙소로 가는 길, 잿빛 하늘에서 간혹 물방울이 떨어지지만, 큰 비가 될 것 같진 않다. 작은 배낭 하나를 매고 다니는 여행객. 배낭을 잃어버리고 난 뒤라서 내 몰골은 형편없어 보일 것임이 틀림 없다. 동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 곳곳의 그래피티는 내 눈길을 사로 잡을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피티 사이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샤워를 하고 베로니카를 찾아 나선다.

  베로니카를 만나러 가는 길, 아담하다. 높은 건물들을 찾을 수 없는 벽돌로된 골목길.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 서유럽과 동유럽의 분위기가 동시에 묻어났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이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올 터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광장은 나왔고, 나는 베로니카를 만날 수 있었다. 광장 한켠에 있는 베로니카.


6. 죽기로 결심한 베로니카는, 살아 있었다.

  그가 그 조그마한 광장에 들어섰을 때, 베로니카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세상을 바라보던 통로로 이용하던 창(窓)은 없었다. 그리고 분수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도]분수대의 모티브가 되었을 법한, 동상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어디선가에서 그 동상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것이었다. 그도 그 분수대를 바라 보았다. 베로니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는 광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곳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그런 것을 알리는 표지가 전혀 없었다. 그곳은 그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그 소설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소설의 배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듯 한] 하나의 광장, 수 많은 길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광장 주변의 노천 카페들도, 소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광장 변두리에 위치한 한 카페에 앉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었고,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베로니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커피 향이 그의 코 주위를 감쌌다.

  그는 단지, 그 곳에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은 실재한 모습이 아닌 그의 상상속에 존재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소설 속에서 숨쉬던 공기를 마셔보고 싶었고, 그 곳에서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소설의 배경이라는 것. 정말 별 것 없구나.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곳. 그곳은 전혀 꾸며지지 않았다. 베로니카의 모습, 그것은 그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그곳이었지만, 그 수 많은 사람들에겐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광장, 하나의 공간에 불과했다. 
  그런 장소 였기에, 그는 그 장소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어느새 특별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한국에서 찾아다녔던 소설이나 시(詩)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던 것이 배어 있었다. 진실성.



  그는, 단지 베로니카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작은 광장의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그곳의 여유로움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며, 류블랴나에 갔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까지. 그리고 베오그라드에서 크로아티아를 거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그리고 결국, 그곳에서, 베로니카를 보았다.

 단지, 베로니카가 보고 싶어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찾아간 그의 이야기.


-숙소 옆의 그래피티


-광장으로 가는 길.




-소설속에서 분수의 모티브가 되었을거라고 생각되는 동상



- 광장으로 이어지는 번화가



 -도시를 관통하던 하천







- 아담한 도시 중앙 광장



-광장 건너편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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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블라냐 성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



-미니어처



-류블랴나 역의 매점



-아담한 류블랴나 역



-독특했던 류블랴나 역의 과일 자판기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역 앞.




-자그레브 과일 시장



- 공사중이던 건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아침의 스플리트 역


-스플리트 올드 시티



-밤의 스플리트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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