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주가무(飮酒歌舞)

   술이 있는 곳엔[엄밀히 따지자면 술을 마시는 곳] 음악이 있고, 음악과 술이 있는 곳에는 춤이 있다. 술과 음악과 춤이 함께 한 장소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인 듯 하다. 대학생 시절을 되돌아 보며 하는 말 중에서도 신입생 혹은 학년이 낮을 때 쉴새 없이 음주가무를 즐겼지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실제로 고대 국가였던 고구려나 동예, 옥저 같은 나라에서는 추수를 끝낸 뒤 하늘에 감사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몇 일 밤낮을 지새면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그렇게 고대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는 행사들이 있어왔다. 항상 좋은 일이 있으면 술과 노래와 춤이 함께 한 것이다.

  슬프니까 술 한잔. 그리고 슬픈 음악. 기쁘니까 술 한잔. 그러면서 즐거운 음악. 그냥 심심하니까 술 한잔. 그럴 땐 적당한 음악. 노래방에 가면, 노래가 흘러 나오고, 맥주가 들어오고, 앞으로 튀어나가 서로 마이크를 잡고 몸을 흔들어 대기도 한다. 

  대학의 단과대, 학과별 행사가 있을 경우에는 넓은 장소에서 음주가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음주가무를 목격하고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혹은 그런 집단적인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음주가무를 꺼린다. 어느새 세월은 흘렀고, 음주가무는 어둠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좀 더 개방적인 장소라기 보다는 좀 더 폐쇄적이고 은밀한 장소에서 음주가무가 이루어 지고 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고, 공개적, 공동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는 사람보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음주가무를 논하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이 찾아든다.


2. 이제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던 시절.

  대학시절 봄바람이 내 볼을 스치기 전부터, 야외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아직은 밤이면 약간 찬 기운이 느껴지던 4월의 첫째주 금요일. 해오름제라는 이름으로 사물놀이패가 하늘을 울리고, 우리들은 광장에서 밤새 음주가무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물론 지금도 해오름제는 매년 열린다]

  내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대학에 들어오는 후배들을 보니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대학 이란 곳을 만으로 6년을 다니다 보니] 후배들은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몇 몇 후배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배란 자신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물론 나도 그들을 모른다] 그들을 탓 할 마음은 없다. 그들이 선배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든 없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니까 말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던 일들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학점, 취업이 뭔지. 그런 것들을 1학년 때 부터 고민하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3. 여행, 그것은 불확실성만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세계.
  
  나는 카라카스의 지하철 역에서 열심히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었다. 그 날 오후, 카라카스의 올드시티를 거닐어야 겠다는 생각에 올드시티에 위치한 지하철 역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비교적 단순한 지하철 노선도 였지만, 그 날 따라 노선도는 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가이드북의 노선도와 실제 노선도가 달랐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열심히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냐고. 

  목적지를 말하자, 나에게 말을 건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는 자기도 거기까지 간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지하철 표를 구입하고 그들과 함께 열차에 올랐다. 세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 그들은 세 커플처럼 보였는데, 커플은 아니고 모두 친구였다. 아무 짧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한 명의 여자, 그리고 짧은 영어를 하는 또 한명의 여자, 그리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한 명의 여자. 짧은 영어를 구사하는 여자가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그리고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두 명의 남자와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짧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기도 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여자는 스페인어로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 왔기 때문에.


4. 

  한 명의 동양인 남자와 세 명의 백인 계열 느낌이 많이 나는 남자. 그리고 구릿빛 피부가 돋보이는 두 명의 여자, 이탈리아계의 백인 여자 한명. 그들은 광장의 동상 아래에 빙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여섯명의 베네수엘라 대학생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진(Jin)이라고 불리던 한 동양인 남자는 그들의 말에 기계적으로 반응 하듯이 반박자 늦은 웃음을 보였다.
 
  담배가 다 타 들어가자 약간의 적막이 흘렀고, 그는 말했다. 너희들 술마시러 가냐? 그는 왠지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사실 그도 술을 안 먹은지 꽤 되었기에 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섯명의 대학생들은 그에게 말했다. 응, 그들은 루이지(Luigi)를 가리키며 그의 집에서 오늘 파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덧붙였다. 너도 갈래?

  그들 중 한 명은 다른 약속이 있다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베네수엘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다섯명의 학생들과 그는 루이지의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골동품 가게에 들러, 골동품 카메라를 구경하기도 하고, 마실 술을 좀 사가기도 했고, 빵 가게에 들러 바게트와 안에 넣어 먹을 햄과 치즈를  사기도 했으며, 음료수를 몇 개 사기도 했다. 술은 많이 사지 않았다. 루이지의 집에 와인이 많이 있어서 그걸 마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서 아파트로 향했다.



5. 
  
  나는 그들을 따라 아파트로 들어갔다. 전망이 꽤나 좋은 곳이었다. 시벨(Cibel)이 창 밖 너머 저 아래 위치한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곳이 대통령이 살고 있는 곳이야.

  익숙한 리듬의 음악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테이블 위에는 술이 있었고, 그들은 나에게 술을 권했다. 맛이 나쁘지 않은 와인이었다. 와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도수가 약한. 약간은 음료수에 가까운 와인이었다. 맥주보다 알콜 농도는 더 높았지만, 맥주만큼 취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맥주는 취하는 것 보다 배가 쉽게 부르게되는 술이긴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유명한 가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그들이 유명한 가수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음악은 신이 났고, 그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라틴 댄스.
  
  그들은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에게도 라틴 댄스를 권했다. 나는 스텝을 밟았다. 아마존에서 배운 스텝이 유용하게 쓰였고, 나는 아마존에서 보다 더 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또 다른 스텝도 가르쳐 주었다.

  아드리아나가 살사춤을 추었다. 엄청난 흔들림이었다. 놀라울 정도 였다.[라틴의 여자들은 어릴 때 부터 엉덩이를 흔들며 살사를 추니 커 가면서 더 부드럽게 흔들 수 있는 것 같다. 쿠바에서 본 꼬마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놀랄 정도 였으니]
  나에게 살사를 권했지만, 난 도저히 그 속도의 반의 반도 못따라 갈 정도였다. 허리가 끊어 질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대낮부터  시작된 술판은 흥을 더해갔고, 밖은 어느새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6. 루나(Luna).

  점점 밤이 깊어가자, 음악은 좀 조용한 것으로 바뀌었다.[밤 늦은 시간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며 놀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가끔 조용히 라틴 댄스를 추거나 술을 홀짝 거리고, 대화를 나누었다.
  
  루이지의 엄마와 누나가 밖에서 돌아왔지만, 파티는 계속 되었다.[루이지는 피부가 백인 같았는데, 누나와 엄마는 피부가 검은 빛에 가까웠다. 혼혈은 역시 랜덤이라는 생각] 그는 루이지의 엄마와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계속 술을 마셨다. 그날 따라 그는 좀처럼 취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즐거웠기 때문일까? 그는 대학시절 정말 즐거운 술 자리에서 소주 대꼴 3병을 마신 적도 있다.[물론 세번 토했지만]

  밤은 깊어 갔다. 그리고 창 밖 저 높이에는 달이 떠 있었다. 더러는 방으로 들어가 야구를 보았고, 더러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는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전철은 끊겼을 테고, 루이지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아침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 날 점심 즈음,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 저 높이 떠서 빛을 창 안으로 쏟아내고 있는 달을 보자 갑자기 그는 "루나"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는 입 밖으로 소리를 만들어 보았다.  Luna. 

  옆에 있던 시벨이 말했다. Si, SI, Luna. 그리고 별에 대해서 덧붙였지만, 그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루나. 라는 말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7. 
  그들은 거실에 나를 위해 간이 침대를 설치해 주었다. 그 위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6시 쯤 일어났다. 숙소까지 가는데 1시간.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고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잠이 든 시간이었다. 나는 간이 침대를 접고, 이불을 개어서 옆에 놓아 두었다. 그리고, 쪽지를 하나 써서 탁자위에 올려 놓았고, 조용히 루이지를 깨웠다[출입문은 안에서도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카를로스와 루이지가 아파트 입구까지 배웅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카라카스에서의 하우스 파티는 그렇게 끝났다.



- 카라카스 시내

- 파티 멤버 + 찍사 Cibel

- 울랄라


- 표정들

- 동상

- 구조가 좀 특이하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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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 팔에 그림 그려주는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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